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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 '헌법불합치'

※ 이 글은 9월 9일 발행된 <엔츠레터> 17호에 실린 아티클입니다. 탄소중립 관련 소식과 인사이트를 받아보고 싶으시다면 지금 엔츠레터를 구독해보세요!

 


 

헌법재판소가 지난 8월 29일,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법에 합치하지 아니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법안에 대해 사실상의 위헌 결정이 나온 건 아시아 최초 사례입니다. 오늘은 헌재의 이번 결정이 어떤 의미와 파장이 있는 것인지 Q&A의 형태로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Q -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우리나라에서는 2020년부터 총 4차례 유사한 내용으로 국가의 기후변화 대응법안에 대한 헌법소원이 있었습니다. 헌법소원이란, 헌법상 보장된 자신의 기본권을 특정 법률에 의해 침해당한 당사자가 그 법률이 헌법정신에 맞는 것인지 판단해달라고 헌법재판소에 구제를 청구하는 일입니다. 헌법에 어긋나 잘못된 법률을 고치거나 폐기할 수 있는 길인 건데요.

기후변화 관련 헌법소원은 2020년 청소년 환경단체 ‘청소년기후행동’ 회원 19명으로부터 시작되어, `21년 시민 123명, `22년 62명의 영유아 아이들, `23년 또 다른 시민 51명 등 총 255명의 청구인들에 의해 매년 이어졌습니다. 이번 결정은 이 네 번의 헌법소원을 병합해 다룬 결과입니다.

 

Q - 어떤 법률이 문제가 되었나요?

청구인들은 ‘탄소중립기본법(구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8조 제1항 및 부속 시행령과 관련 계획 등에 주목했습니다. 법 제8조 제1항에는 “2030년까지의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로 설정”하도록 되어 있는데, 이 조항이 기후위기 현황에 비해 현저히 부족한 대응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로 인해 청구인들은 생명권, 건강권, 평등권, 환경권 등의 기본권이 침해받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① 위임받은 시행령이 세운 40%라는 감축목표 수치가 불충분하고 관련 예산도 준비되지 않아 실효성이 부족하며, ② 2031년 이후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설정하지 않았고, ③ 감축목표의 집행을 보장하는 방법 역시 충분히 규정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Q - ‘헌법불합치’ 결정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을 헌법불합치 결정했습니다. 만약 어떤 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되어 ‘위헌’ 결정을 받는다면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하게 되는데요, 헌법불합치란 그러한 효력 정지가 사회적 혼란을 가져올 수 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정입니다. 즉 해당 법 조항이 사실상 위헌이지만, 기한 내 법 개정이 이루어질 때까지 한시적으로 기존의 효력을 유지시키는 결정인 것이지요.

하지만 헌재가 청구인들의 모든 주장을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시행령이 설정한 2030년까지 ‘40%’라는 수치, 기본계획이 설정한 연도별·부문별 감축목표는 합헌으로 판단해 기각했습니다. 대신 정부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목표로 하면서도, 정작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전혀 설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판단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습니다.

헌재는 “2050년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의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감축을 실효적으로 담보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며, “이는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감축 목표를 규율한 것이며 기본권 보호 의무를 위반해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다”고 결정 이유를 밝혔습니다.

 

Q - 이번 결정이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사실 2015년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파리협정에 따라, 우리나라는 내년까지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National Determined Contribution, NDC)를 세워 UN에 제출해야하는 상황이긴 했습니다. 당연히 이전 목표인 ‘2030년 40%’보다 진전된 수준의 목표를 수립해야하고요.

그러나 이번 헌재의 결정으로 인해, 5년씩 더디게 나아가던 국가의 중장기 감축목표 수립이 훨씬 속도를 내게 되었습니다. 기본법 제8조 제1항이 헌재가 결정한 기한인 2026년 2월 28일까지 유지된 후 효력이 상실되므로, 정부가 그 안에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를 세워야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탄소중립기본법은 배출권거래제와 목표관리제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들에도 광범위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탄소중립기본법과 그 위임 시행령 등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설정하면,「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등은 그 목표에 기반하여 ‘온실가스 배출허용 총량’을 정하게 되고, 각 기관 및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허용량을 할당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2031년부터 2050년까지의 감축목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워질지에 따라 기업들도 중장기 기후변화 대응 계획을 강화해야 할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는 ‘현재’

이번 헌법불합치 결정은 2022년생 영유아들부터 중고등학생 청소년들까지, 일명 ‘미래세대’들이 당사자로서 제기한 헌법소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재앙이 나의 일이 아니라 그저 막연한 미래의 일이라고 안일하게 여겨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번 결정을 통해 그들에게 기후변화는 결코 미래가 아니라 당면한 현재임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헌법이 국가에게 기후변화로부터 국민의 기본권을 더 적극적으로 보호하라는 메시지를 전한 만큼, 어른들은 다시금 이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마음 깊이 새겨야겠습니다.

 

 

* 이미지 출처: 2050 탄소중립위원회 (Thumbn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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