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EU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주요 공시·실사 제도의 적용 시점을 조정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도 시행 일정이 일부 완화되는 흐름과 별개로, 국내에서는 그린워싱을 둘러싼 시민사회의 문제 제기와 규제당국의 집행이 점차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중요한 변화는 단순히 단속 건수가 늘어났다는 데 있지 않습니다. 기업의 친환경 주장 자체를 문제 삼는 수준을 넘어,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산정 기준, 감축 실적, 제품 단위의 수치와 근거까지 검증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줄어든 적발, 달라진 표적
국내 그린워싱 적발 건수는 2023년 4,935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24년 2,528건, 2025년 1,275건으로 2년 연속 감소했습니다. 점검 대비 위반 비중도 2024년 19.7%에서 2025년 9.5%로 낮아졌고, 2025년 위반 사례의 97% 이상은 사업자의 자발적 광고 수정으로 마무리됐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린워싱 리스크가 완화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적발 건수의 감소를 곧바로 위험 축소로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의 감소세는 단속 강도가 약해졌다기보다, 규제당국이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과 자진 시정에 무게를 둔 결과에 가깝습니다.

현재 국내 그린워싱 규제는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공정거래위원회의 이원 구조로 운영됩니다. 기후부는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지원법」을 근거로 제품의 환경성을 관리하고, 공정위는 「표시·광고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근거로 사업자 전반의 표시·광고 행위를 감시합니다. 두 기관은 기준과 절차가 따로 운영된다는 지적에 따라, 2026년 2월 실무회의를 거쳐 연내 통합 조사 체계와 단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단속의 양보다 문제 제기의 방향입니다. 그동안 규제당국이 주로 겨냥한 것은 ‘에코’, ‘친환경’, ‘지속가능’처럼 근거가 불명확한 표현이었습니다. 패션 SPA 브랜드들이 인조가죽 제품에 친환경 표현을 사용했다가 경고를 받은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그러나 최근 시민사회가 제기하는 문제는 단순한 표현을 넘어, 그 표현을 뒷받침하는 숫자 자체를 향하고 있습니다. 아직 이러한 문제 제기가 행정제재로 본격화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기업이 공시한 감축 실적, 제품별 배출량, 탄소중립 목표의 산정 근거가 직접 검증의 대상이 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큽니다. 그린워싱의 표적이 ‘무슨 말을 했는가’에서 ‘그 말이 어떤 숫자로 입증되는가’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시된 숫자를 다시 따지다
이러한 흐름이 공시 데이터의 범위 문제로 번진 사례는 2026년 자동차 산업에서 나왔습니다. 한 환경단체와 법률사무소는 국내 한 완성차 기업이 지속가능성보고서에 공시한 철강 사용량에 자체 공장에서 직접 사용한 물량만 반영하고, 협력사를 통해 부품·반제품 형태로 조달되는 철강은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공정위와 기후부에 신고했습니다.
이들이 문제 삼은 것은 철강 사용량의 절대 규모였습니다. 자동차 한 대에는 평균 900kg이 넘는 철강이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해당 기업이 공시한 철·알루미늄 사용량은 차량 1대당 약 0.33톤 수준에 그쳤습니다. 협력사 단계에서 투입된 철강까지 포함하면 실제 사용량은 공시된 수치를 훨씬 상회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 제기의 핵심입니다.
쟁점은 단순히 숫자가 맞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량을 어디까지 집계했느냐입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철강의 상당 부분은 협력사가 부품이나 반제품 형태로 가공해 납품합니다. 이 경우 완성차 기업의 자체 공장에서 직접 투입한 철강만 집계하면, 제품 생산에 실질적으로 투입된 철강 규모와 그에 따른 환경 영향이 과소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공시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국내에는 철강과 같은 원자재 사용량을 어떤 경계로 집계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공시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이 아직 정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지속가능경영보고서의 상당 부분도 여전히 기업의 자율적 작성 영역에 머물러 있습니다. 따라서 자체 공장에서 직접 사용한 물량을 기준으로 집계했다는 사실만으로 어떠한 규정을 위반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글로벌 공시 기준의 방향은 분명히 달라지고 있습니다.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은 자원 사용이 중대한 기업에 대해 주요 원재료의 총 중량, 재료별 구성, 산정 방법과 주요 가정을 공시하도록 요구하며, 자체 운영뿐 아니라 업스트림 가치사슬에서 발생하는 자원 유입까지 고려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기준이 확산되면, 단순히 자체 공장 기준의 사용량만 제시하는 방식은 점차 설득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앞서 한 대형 철강사의 탄소저감 강재 광고를 두고 환경단체가 감축량을 어떤 방식으로 배분했는지를 문제 삼았다면, 이번 사례에서는 사용량을 어디까지 집계했는지가 도마에 올랐습니다. 그린워싱 논쟁의 초점이 친환경 표현의 적절성에서, 그 표현을 뒷받침하는 데이터의 경계와 산정 방식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무가 되는 공시, 무거워지는 숫자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가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2026년 2월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KSSB)는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서 제1호와 제2호를 의결·공표했고, 금융위원회는 연결자산총액 3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지속가능성 공시를 단계적으로 의무화하는 로드맵(안)을 제시했습니다.
공시 의무화가 시행되면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긴 환경 관련 수치는 더 이상 자율 보고서 안의 참고 정보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표시광고법과 환경기술산업법상 그린워싱 이슈를 넘어, 거래소 공시규정 및 향후 법정공시 체계상 허위·부실공시 리스크와도 연결될 수 있습니다. 공시가 의무가 되는 순간, 보고서에 담긴 숫자는 외부의 점검과 재계산을 견뎌야 하는 정보가 됩니다.
결국 그린워싱을 가르는 잣대는 ‘무엇을 친환경이라 말했는가’에서 ‘그 주장을 떠받치는 숫자가 실제와 맞는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규제당국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투자자가 공시된 숫자를 직접 되짚어 보는 환경에서는, 보고서에 담긴 수치가 탄탄한 근거로 뒷받침되지 못할 경우 그 자체가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기업의 그린워싱 관리는 문구를 가다듬는 수준을 넘어, 그 문구가 딛고 선 숫자를 관리하는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사용량과 배출량을 어떤 기준연도, 방법론, 조직경계와 운영경계에 따라 집계했는지 일관되게 관리하고, 그 산정 근거를 추적 가능한 형태로 남겨 두며, 광고·IR·공시가 동일한 데이터에서 출발하도록 맞추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스템이 그린워싱 위험을 완전히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외부의 점검을 견디는 힘은 결국 잘 관리된 숫자에서 나옵니다. 검증되지 않은 수치를 검증된 수치처럼 사용하지 않고, 모든 주장이 추적 가능한 데이터 위에 서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공시 의무화 시대의 그린워싱 관리가 출발해야 할 지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