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24일, 미국 16개 주 검찰총장은 주요 회계법인을 대상으로 38쪽 분량의 서한을 발송했습니다. 회계법인들이 기후공시 기준의 확산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동시에 관련 사업에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이 감사인의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이 서한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조치도, 구체적인 위반 사례를 입증한 문서도 아닙니다. 또한 특정 기업의 공시 작성과 인증을 동일한 기관이 수행한 사례를 제시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공시 작성을 지원한 자가 동일한 공시를 검증해도 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기후·지속가능성 공시가 확대되면서 공시 정보에 대한 인증 역시 제도화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감사인 독립성을 둘러싼 국제 기준과 주요국 제도가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살펴보고, 2030년부터 지속가능성 공시 인증을 의무화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한 한국의 현황도 짚어봅니다.
서한은 무엇을 문제 삼았나
이번 서한에서 검찰총장들은 회계법인들이 TCFD 권고안과 ISSB 지속가능성 공시기준을 지지하고 넷제로 이니셔티브에 참여하는 한편, 관련 자문·보증 서비스에서도 경제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이러한 이해관계가 감사인의 객관성과 독립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다만 기후공시 기준이나 넷제로 이니셔티브에 대한 공개적인 지지 자체를 감사인의 독립성 문제로 볼 수 있는지는 논쟁의 여지가 있습니다. 이번 서한 역시 특정 회계법인의 독립성 위반 여부를 판단했다기보다, 기후·ESG 관련 자문과 보증 사업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이해상충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보는 편이 적절합니다.
외신 보도에 따르면 검찰총장들은 최근 5개 회계연도의 기후공시 보증 및 ESG 컨설팅 수익, 기후정보의 중요성 판단에 관한 지침, 감사 조직과 자문·보증 조직 사이의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 통제장치 등의 자료도 함께 요구했습니다.
지속가능성 공시 인증의 핵심 쟁점
지속가능성 공시 인증에서 중요한 독립성 쟁점 중 하나는 ‘자기검토 위협(self-review threat)’입니다. 공시 작성이나 산정체계 구축에 관여한 기관이 이후 같은 정보를 검증할 경우, 자신이 수행한 업무를 스스로 평가하게 되어 객관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문제입니다. 다만 같은 기업에 자문과 보증 서비스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 일률적으로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순한 정보 제공이나 기술 지원과 달리, 산정 방법론을 결정하거나 데이터를 직접 작성하고 내부통제를 대신 운영하는 등 공시 작성에 깊이 관여할수록 이후 보증 업무의 독립성 문제가 커질 수 있습니다. 자문 조직과 인증 조직이 별도 법인으로 나뉘어 있더라도 동일한 경영·품질관리 체계 아래 운영되는 관계라면, 형식적인 법인 분리만으로 독립성 문제가 해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국제 동향: 지속가능성 인증 기준의 수립
지속가능성 보증의 독립성은 이번 서한을 계기로 처음 등장한 의제가 아닙니다. 국제 기준 제정기구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지속가능성 보증에 필요한 독립성과 품질관리 원칙을 제도화해 왔습니다.
IAASB(국제감사인증기준위원회)는 2024년 11월 지속가능성 보증 전용 기준인 ISSA 5000을 확정했고, IESBA(국제회계사윤리기준위원회)는 2025년 1월 지속가능성 보증업무 수행자를 위한 윤리·독립성 기준인 IESSA를 발표했습니다. IESSA는 보증 대상 기업에 대한 자문 제공, 보수 의존도, 이해관계 보유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독립성 위협을 식별하고 이에 적절히 대응하도록 요구합니다.
두 기준의 중요한 특징은 적용 대상을 회계사로 한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회계법인이든 별도의 검증 전문기관이든 지속가능성 보증을 수행하는 주체라면 독립성·전문성·품질관리와 관련된 요건을 충족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즉 국제 기준은 특정 직업군에 보증업무를 한정하기보다 수행자의 독립성과 전문성, 품질관리체계를 중심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다만 실제로 어떤 기관에 지속가능성 인증 시장을 개방할지는 각국의 입법과 제도 설계에 달려 있습니다. EU의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은 법정감사인 외에 다른 감사인이나 독립 보증 서비스 제공자(IASP)에게 보증업무를 허용할지 회원국이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다만 IASP를 허용하는 경우에도 윤리·독립성·품질관리·감독 등에서 법정감사인에게 적용되는 것과 동등한 요건을 갖추도록 요구합니다.
국내 동향: 2030년 인증 의무화, 세부 설계는 남아 있다
한국의 지속가능성 공시는 2028년부터 단계적으로 의무화될 예정입니다. 금융위원회가 2026년 7월 발표한 「지속가능성 공시 제도화 방안」에 따르면, 2028년에는 연결자산총액 10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를 시작으로 2029년 5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까지 대상이 확대됩니다. 이후 2028~2029년 시행 상황을 평가해 2030년부터 연결자산총액 2조 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습니다. 공시는 자본시장법상 사업보고서에 포함되는 법정공시 형태로 도입될 예정입니다.
그러나 지속가능성 정보가 사업보고서에 포함된다고 해서 곧바로 재무제표 감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부감사인의 재무제표 감사와 지속가능성 정보에 대한 제3자 인증은 별개의 업무입니다. 정부는 공시 의무화 시점보다 늦은 2030년부터 지속가능성 정보에 대한 제3자 인증을 의무화할 계획이며, 인증 대상과 범위, 제한적·합리적 인증 등 인증 수준, 인증업자의 진입요건은 향후 자본시장법령 개정 과정에서 구체화될 예정입니다.
국회에도 지속가능성 정보를 사업보고서에 포함하고 제3자 인증의 근거를 마련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복수 발의돼 있습니다. 현재 확정된 것은 공시와 인증의 도입 일정 및 기본 방향입니다. 어떤 인증기준을 적용할지, 누가 인증업무를 수행할지, 인증인의 독립성을 어떻게 보장할지는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인증기준과 인증업무 수행자의 범위를 두고는 서로 다른 의견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2026년 6월 한국공인회계사회가 개최한 지속가능성인증포럼에서는 회계법인 소속 토론자가 ISSA 5000을 기반으로 인증기준을 단일화하고 재무정보 감사체계와 연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반면 표준·검증기관 소속 토론자는 ISO 14019 등 다른 기준의 활용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이는 각 업계 전체의 공식 입장이라기보다, 공개 토론에서 각 기관 소속 전문가가 제시한 견해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 차이는 단순히 어떤 인증기준을 채택할 것인지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증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기관의 범위와 자격요건, 감독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지와도 연결됩니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 인증기준의 차이가 곧 기준별로 전혀 다른 공시자료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무엇을 공시할지는 KSSB 등 공시기준이 정하고, 인증기준은 인증인이 해당 정보를 어떤 절차와 증거를 통해 확인할지를 정하기 때문입니다.
기업에게 남는 질문
향후 제도 설계에서 기업이 확인해야 할 핵심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지속가능성 공시 가운데 어디까지 인증 대상에 포함되는가. 둘째, 어느 수준의 인증이 요구되며 제한적 보증에서 합리적 보증으로 전환된다면 그 시점은 언제인가. 셋째, 어떤 기관이 인증업무를 수행할 수 있으며, 시스템 구축 등의 자문 서비스를 어디까지 함께 제공할 수 있는가입니다.
현재 단계에서 특정 인증기준을 전제로 별도의 자료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 과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작성·자문·시스템 구축·인증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하고, 향후 인증인의 독립성을 검토할 수 있도록 각 업무의 범위와 산출물을 기록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시에 산정 근거, 데이터의 출처와 변환 과정, 변경 이력, 검토·승인 기록을 체계적으로 보존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인증기관이 업무를 수행하더라도 공시정보가 어떤 데이터와 판단을 거쳐 만들어졌는지를 추적하고 재구성할 수 있는 상태를 갖추는 것이 현재 기업이 공통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가장 실질적인 과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