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글에서 2026년 상반기 KAU25 가격이 반년 만에 두 배 넘게 올랐다는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배출권 가격이 톤당 2만 원대를 넘어서 3만원대에 육박하고 있다고 해서, 모든 감축 투자가 갑자기 경제성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로 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수소환원제철이나 CCUS처럼 난감축 공정을 바꾸는 기술은 탄소 1톤을 줄이는 데 수만 원에서 10만 원 이상이 듭니다. 배출권 가격이 1만 원일 때는 물론이고 2만 5천 원이어도, 기업 입장에서 합리적인 선택은 설비 투자가 아니라 배출권 구매입니다. “탄소가격이 오르면 감축이 일어난다"는 교과서적 전제가 난감축 업종에서는 잘 작동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간극을 메우려는 제도가 **탄소차액계약제도(CCfD, Carbon Contracts for Difference)**입니다. 그리고 올해, 한국에서 이 제도가 법제화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1. 탄소차액계약제도란 무엇인가요?
CCfD는 정부와 기업이 일정 기간 적용할 탄소 가격을 미리 약정하는 계약입니다. 핵심은 양방향 정산 구조입니다.
• 시장의 배출권 가격이 약정 가격보다 낮으면 → 정부가 기업에 차액을 지급합니다
• 시장가격이 약정 가격보다 높으면 → 기업이 초과분을 정부에 반납합니다
정부가 사실상 탄소 가격의 하한선을 보장하는 구조입니다. 가정한 숫자로 보면 이해가 빠릅니다.
| 구분 | 기준계약가격 (가정) | 시장가격 | 정산 방향 |
|---|---|---|---|
| 도입 초기 | 80,000원/톤 | 25,000원/톤 | 정부 → 기업 55,000원 지급 |
| 가격 상승기 | 80,000원/톤 | 60,000원/톤 | 정부 → 기업 20,000원 지급 |
| 가격 역전 시 | 80,000원/톤 | 95,000원/톤 | 기업 → 정부 15,000원 반납 |
※ 제도 설계가 확정되지 않아 위 수치는 구조 이해를 돕기 위한 가정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보조금이 아니라 계약이라는 점입니다. 일회성 지원금은 받고 끝이지만, CCfD는 설비의 회수 기간 전체에 걸쳐 탄소 가격 변동성을 제거합니다. 기업이 투자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진짜 이유가 “지원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15년 뒤 탄소 가격을 알 수 없어서”**라는 진단에서 나온 설계입니다.
2. 한국은 어디까지 와 있나요?
올해 들어 관련 움직임이 빠르게 이어졌습니다.
| 시점 | 내용 |
|---|---|
| 2026년 3월 | 「탄소중립산업 육성 및 기업의 탈탄소 전환 촉진에 관한 특별조치법안」 발의 (CCfD 포함) |
| 2026년 6월 | 기후에너지환경부, ‘한국형 탄소차액계약제도 설계 및 법령안 마련 연구’ 용역 추진 |
| 2026년 하반기 | 「탄소중립산업법」·「기후테크육성특별법」 제정 추진 (생산세액공제 + CCfD) |
기후부는 법안 통과를 전제로 하위법령과 운영지침을 선제적으로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연구 용역에서는 지원 대상 업종과 기술, 최소 감축량, 입찰·선정 절차, 기본계약가격 산정 방식, 재정지출 상한 장치까지 검토됩니다. 표준계약서와 기업용 가이드북도 포함되어 있어, 제도 도입 준비가 상당히 구체화된 단계로 볼 수 있습니다.
대상은 ‘특정 기술’이 아니라 ‘고비용 혁신 설비’
우선 지원 대상으로는 철강·석유화학·시멘트 등 다배출 업종이 거론됩니다. 다만 기후부는 수소환원제철이나 CCUS처럼 특정 기술을 미리 정해놓는 방식은 아닐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감축 효과와 투자비 부담이 큰 혁신 설비 전반을 검토하겠다는 것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우리 기술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미리 단정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계약 기간은 15년 안팎의 장기계약으로 설계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습니다.
재원은 배출권 유상할당 수익금
재원으로는 배출권거래제 유상할당 수익금이 유력합니다. 제4차 계획기간 동안 발전 부문 유상할당 비율은 2026년 15%에서 2030년 50%까지 높아지고, 발전 외 부문에는 15%가 적용됩니다.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산업계가 유상할당으로 낸 돈이 CCfD를 통해 다시 산업계의 탈탄소 투자로 돌아오는 순환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배출권 가격이 오를수록 CCfD의 재원도 커집니다. 지난 상반기의 가격 급등은 기업에는 비용이었지만, 제도 설계자에게는 재원 확보 신호이기도 했습니다.
3. 먼저 시행한 독일의 경험
독일은 EU 회원국 중 처음으로 기후보호계약(Klimaschutzverträge)을 시행했습니다. 화학·시멘트·제지·석고 등 에너지 집약 산업을 대상으로 공개 입찰을 진행해 15개 기업을 선정했고, 향후 **15년간 총 28억 유로(약 4조 2천억 원)**를 지원합니다. 기업별 지원 규모는 약 5,190만 유로에서 5억 6,300만 유로까지 편차가 크며, 이들 프로젝트는 계약 기간 동안 약 1,700만 톤의 배출량을 줄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국 정부도 독일·네덜란드·일본의 법·제도와 운영 사례를 조사해 한국형 설계에 반영할 계획입니다. 독일 사례에서 특히 참고할 만한 지점은 경쟁 입찰 방식입니다. 톤당 지원 단가가 낮은, 즉 같은 돈으로 더 많이 줄이는 프로젝트가 선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제도가 도입되면 감축 비용을 정확히 계산해 제시할 수 있는 기업이 유리해집니다.
4. 기업이 지금 준비해야 할 것
① 감축 단가(원/톤)를 계산해 두어야 합니다
CCfD가 경쟁 입찰 방식으로 설계되면, 심사의 핵심 지표는 **“이 설비로 톤당 얼마에 줄이는가”**가 됩니다. 총투자비나 감축량 중 하나만으로는 답이 되지 않습니다. 설비 투자비, 운영비 증감, 기대 수명, 연간 감축량을 묶어 단가로 환산한 숫자가 필요합니다. 이 계산의 출발점은 결국 현재 배출량을 설비 단위로 정확히 알고 있는지입니다.
② 베이스라인 배출량의 신뢰도가 곧 계약의 신뢰도입니다
차액을 정산하려면 “원래대로였다면 얼마나 배출했을 것인가"라는 기준선이 필요합니다. 베이스라인이 느슨하면 과다 지원 논란이 생기고, 반대로 보수적으로 잡히면 기업이 받을 금액이 줄어듭니다. 제도가 본격화되면 검증된 배출량 이력이 협상력의 근거가 됩니다. 지금부터 쌓이는 데이터가 몇 년 뒤 계약 조건을 좌우한다는 뜻입니다.
③ 내부탄소가격 시나리오에 ‘정책 시나리오’를 추가하세요
지난 글에서 배출권 가격 상승에 맞춰 내부탄소가격 가정을 갱신하라고 말씀드렸는데, CCfD는 여기에 변수를 하나 더합니다. 같은 설비라도 CCfD 적용 시와 미적용 시의 회수 기간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투자심의 자료에 두 가지 시나리오를 병기해 두면, 제도가 확정되는 시점에 바로 의사결정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④ 다른 지원 제도와의 중복 가능성을 정리해 두세요
생산세액공제, 에너지효율향상 지원사업, K-스틸법상 특구 혜택 등 저탄소 전환 지원 수단이 동시에 설계되고 있습니다. 제도마다 지원 방식과 중복 수급 가능 여부가 다를 수 있으므로, 우리 투자 계획이 어느 제도의 요건에 걸리는지 미리 지도를 그려 두는 편이 좋습니다.
5. 마무리
CCfD는 아직 법안 통과를 기다리는 단계이고, 기준계약가격 산정 방식이나 지원 대상 범위 같은 핵심 설계는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신청할 수 있는 제도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금 짚어 둘 이유는, 이 제도가 “감축 투자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난감축 업종의 투자 보류는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계산의 결과였습니다. 톤당 10만 원을 써서 1만 원짜리 배출권을 대체하는 투자는 합리적이지 않았으니까요. CCfD는 바로 그 계산식에 개입합니다.
제도가 열렸을 때 먼저 움직일 수 있는 기업은, 그때 가서 검토를 시작하는 기업이 아니라 이미 자사의 감축 단가와 배출량 베이스라인을 숫자로 가지고 있는 기업입니다. 준비의 핵심은 정책 전망이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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